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 설국은 1935년부터 시작해서 무려 12년 동안 연재되었고 1948년에 완전판이 간행된 작품입니다. 일본 니가타 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분량이 짧은 데다가 뚜렷한 플롯이 없을 정도로 스토리가 모호한 느낌이 들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며 읽어도 좋을 작품입니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899년 오사카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한시와 문인화를 즐겼으며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2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그는 누이와 함께 조부모 밑에서 자라게 됩니다. 7세가 되던 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이도 세상을 떠나자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고 혼자 지내다 보니 그는 남들보다 일찍 고독과 허무를 경험하고 우울한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환경은 그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는 1900년대에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전범국이 되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지켜봐야 했지만 이러한 시대적 혼란은 외면한 채 일본의 전통 풍습이나 남녀관계를 배경으로 한 탐미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작품을 써 내려가 참여주의 작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전쟁의 공포나 인간의 잔인함이나 모두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허무주의의 대가였기에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담담히 외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설국은 196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주요 줄거리
시마무라는 서양 무용을 연구하며 일정한 직업도 없이 물려받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자신이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서양 무용에 대한 비평을 쓰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5월 산으로 둘러싸인 국경지역 온천 마을로 여행을 갔다가 고전 춤을 배우려고 마을에 머물고 있는 고마코라는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냅니다. 그날 밤 그녀는 그의 손바닥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겨보겠다면서 고백을 하듯 시마무라의 이름을 무수히 끄적이고 다음 날 새벽 서둘러 그의 여관방을 떠납니다.
시마무라는 도쿄로 돌아가고 이후 몇 해 동안 그녀에게 끌려 눈 고장인 온천 마을을 다시 찾습니다. 여관에서 만난 고마코는 그새 기생 신분이 되어 있었지만 시마무라가 떠난 날부터 매일매일 손꼽아 그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지 시마무라를 보자마자 자신들이 다시 만난 지 199일째라고 말해줍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자신을 애타게 기다린 것이 뭔가 헛수고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과 고마코 사이에는 어떠한 감정이 싹터도 영원할 수 없단 걸 처음부터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고마코는 시마무라를 마주칠 때마다 얼굴이 새 빨게 지고 시마무라는 그녀의 빨간 볼을 보며 그녀에게 더욱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과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동시에 합니다.
그녀의 빨간 볼은 시마무라가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잊고 뜨거운 감정에 정처 없이 빠져들 것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시마무라는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감정 앞에 흔들리는 것은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마무라는 마을 사람으로부터 그녀가 춤 선생의 병든 아들과 약혼한 사이이고 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생일을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 약혼자에게는 요코라는 이름의 새 애인이 있다는 말도 듣습니다. 시마무라는 온천 마을에 오는 길에 기차에서 그 요코라는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시마무라는 이런 복잡한 삼각 관계도 병든 남자가 죽어버리면 모두 헛수고일 뿐이라는 생각에 혼자 허무함에 빠져듭니다.
눈 고장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밤 고마코가 시마무라를 찾아와 함께 밤을 보내고 자신을 향한 고마코의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을 느낀 시마무라는 자신을 기차역까지 따라오며 배웅하는 고마코를 홀로 남겨두고 서둘러 도쿄행 열차에 오릅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시마무라는 문득 격렬한 외로움에 사로잡힙니다. 헛수고 같은 감정에 거리를 두려 하지만 고마코의 빨간 볼과 그녀가 설원 위에서 느낄 쓸쓸함이 어느덧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쿄로 돌아간 시마무라는 1년 후 다시 눈 고장을 찾습니다. 1년 새 고마코의 병든 약혼자는 죽어 있었고 다시 만난 고마코는 지난해에 시마무라를 역에서 배웅할 때 배웅이란 것이 그토록 괴로운 것임을 깨달았다며 이별하던 순간의 쓸쓸함을 표현합니다. 고마코는 여관의 연회에서 손님을 받을 때마다 수시로 빠져나와 시마무라의 방을 찾았고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쑥덕대기 시작하는데 시마무라는 계속 그녀와 거리를 둡니다. 고마코 약혼자의 애인이었던 요코라는 여인도 시마무라가 머무는 여관의 주방 일을 돕고 있었는데 시마무라는 그녀에게도 묘한 호감을 느끼지만 고마코에게 그러하듯 계속 거리를 두고 그녀를 바라볼 뿐입니다. 요코는 매일매일 죽은 애인의 무덤가를 찾으며 언제 미칠지 모르는 우울한 삶을 살고 있었고 고마코는 그런 그녀를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누에고치 창고를 빌려 쓰고 있는 영화 극장이 불에 타는 것을 발견한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갑자기 2층 객석에서 뛰어내려 죽은 요코를 목격합니다. 고마코는 비명을 지르며 뛰어가 요코를 끌어안고 시마무라는 인파에 몰려 고마코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작품 알기
이 작품의 특징은 무엇보다 작품 전체의 주제 줄거리 인물들의 성격마저도 뚜렷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정경이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속에 지순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의 모습을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의 전반적인 느낌과 분위기는 눈처럼 차갑고 깨끗합니다. 그것은 작품 서두에서 그려지고 있는 눈 덮인 산야의 첫인상이 지속적으로 작용함을 의미합니다.
결말 부분에서 황홀하게 타오르는 불기둥과 스러지는 여인의 사랑은 씁쓸하고도 허망한 여운을 남깁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분위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이 작품의 주제인 사랑의 의미를 아름답게 채색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목에서부터 환상적이고 청순한 분위기가 연상되기 때문에 이 작품 속에 그려진 사랑의 모습도 아름답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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