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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홍글씨 줄거리 및 작가 작품 이해하기

by 오뜨꾸뛰르 2023. 1. 11.

1850년에 출간된 이 소설의 배경인 미국 매사추세츠 주는 당시 청교도가 강세였고 순결한 신앙과 근면 검소를 강조하였으며 여자들의 행실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있었고 이게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된 시기의 소설입니다. 

 

주홍글씨 너대니얼 호손

너대니얼 호손(1804~1864)은 1804년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역선의 선장으로 일했고 호손이 어릴 때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호손 가족은 어머니의 친정인 매닝 가문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외가에서 외삼촌의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였고 그의 첫 번째 선조인 윌리엄 호손은 행정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퀘이커 교도인 여성을 공개적으로 태형에 처했을 만큼 열렬한 청교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윌리엄 호손의 청교도 신앙은 계속 이어져 그의 가문은 17세기말 세일럼에서 있었던 재판에도 앞장섰다고 합니다. 이렇듯 엄격한 청교도 정신이 계승되어 너대니얼 호손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호손은 메인 주에 있는 보든 대학교를 졸업하고 1825년에 세일럼으로 돌아옵니다. 대학을 다니던 때부터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세일럼의 외삼촌집에 머물면서 소설창작에 몰두하게 됩니다. 1842년 결혼을 하고 그는 여전히 소설 창작에 매달렸지만 작품의 문학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수입은 얻지 못했습니다. 호손 가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구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실직을 하게 되었고 실직의 고통 속에서 호손은 청교도주의가 지배하던 17세기 미국의 어두운 사회상을 그린 소설 (주홍 글씨)를 집필했고 이 작품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요 줄거리

미국 보스턴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심판대 위에 젊은 여자가 갓 태어난 딸을 안고 서 있습니다. 그녀의 가슴에는 주홍색으로 `A`가 예쁘게 수 놓여 있는데 이 `A`는 간통을 의미하는 `Adultery`의 첫 글자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헤스터 프린이고 간음죄로 적발되어 심판대에 서 있는 겁니다. 영국 출신인 그녀는 아버지의 강요로 돈 많고 나이 많은 의사와 결혼했고 남편이 시키는 대로 먼저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하지만 금방 온다던 남편은 세월이 흘러도 오지 않았고 소식마저 끊겨 그녀는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살아가던 중 이 마을의 목사인 아서 딤스데일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의 딸 펄을 낳았습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은 금방 마을 전체에 퍼졌고 청교도주의의 엄격한 도덕률에 따라 주민들은 그녀를 재판합니다. 그녀는 불륜의 상대를 끝까지 밝히지 않았으며 아이를 안고 3시간 동안 심판대 위에 서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고 평생 주홍색 글자 `A`를 가슴에 달고 다니라는 판결이 내려집니다. 그녀가 심판대 위에 있을 때 그녀의 남편이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는 뉴잉글랜드에 오는 도중 원주민들에게 잡혀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다가 이제야 보스턴에 도착한 겁니다. 그는 아내가 간음죄로 심판대에 선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가슴에 새겨진 주홍 글씨로 인해 사회적으로 매장이 된 헤스터는 마을 교외의 오두막에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갔고 그녀의 딸인 펄은 자유분방하고 거칠 것 없는 성격의 소유자로 자라납니다. 

 

펄의 아버지이자 헤스터의 간통 상대자 아서 딤스데일 목사는 그동안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고행을 계속하다 몸이 쇠약해졌고 결국 그의 건강을 보살펴 줄 의사로서 로저 칠링워스와 함께 살게 됩니다. 어느 날 로저 칠링워스는 목사의 가슴에서 주홍글씨를 발견하고 그가 펄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복수심에 불타는 그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이 신앙심 깊은 목사를 계속해서 정신적으로 괴롭힙니다. 딤스데일 목사의 괴로움을 알게 된 헤스터는 로저 칠링워스에게 딤스데일 목사를 용서하라고 간청하지만 그가 끝내 거절하자 딤스데일 목사에게 로저 칠링워스의 정체를 밝히게 됩니다.

 

축제일에 설교를 하게 된 딤스데일 목사는 심판대에 서서 모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자기 가슴에 새겨진 글자 `A`를 보여 주며 자기 죄를 고백하고는 헤스터의 품에 안겨 죽습니다. 목사가 죽자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린 로저 칠링워스도 죽고 헤스터는 펄의 미래를 위해 유럽으로 떠났으며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러 뉴잉글랜드에서 속죄하는 삶을 살다가 훗날 딤스데일 목사의 무덤옆에 나란히 묻히게 됩니다.

 

작품 이해하기

헤스터와 딤스데일은 같은 죄를 지었지만 헤스터만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습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받고 그것을 감수하며 살아가지만 헤스터가 아이의 아버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던 딤스데일은 유능하고 성스러운 성직자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위선적인 설교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위선이 아니라 죄의식으로 엄청나게 괴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로저 칠링워스는 딤스데일 목사가 아이의 아버지라는 비밀을 알고 목사를 괴롭히지만 그의 복수심은 목사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한없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그의 복수는 헤스터의 남편임을 숨길 때만 가능했기에 복수심에 불타는 그의 영혼 또한 고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비극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면 애초에 헤스터를 심판대 위에 세운 청교도 집단의 독선일 겁니다 그들에게는 헤스터를 심판할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서의 율법에 따라 무자비한 형벌을 내리며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무시함으로써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호손은 인간의 불완전함이 비극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관용을 거부하는 경직된 신념이 비극을 일으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호손은 이렇게 불행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통해서 경직된 청교도 도덕이 지배한 17세기 미국 사회의 암울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서로의 허물을 함부로 재단하려 할 때 어쩌면 심판자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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