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첫사랑은 1860년에 발표된 투르게네프의 대표작으로 10대 소년이 겪은 첫사랑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주인공 블라디미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인물의 심리를 파악하기가 쉬운 소설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첫사랑을 회상하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첫사랑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
1818년 러시아의 오리올 시에서 태어난 이반 투르게네프는 19세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시인입니다. 명문 귀족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3세 때부터 어머니의 영지인 스파스코애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전통 있는 명문 귀족 출신이었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한 상태였기 때문에 여섯 살 연상의 대지주인 어머니와 결혼했습니다. 미남이고 체격이 좋았던 아버지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20개의 영지와 5000명의 농노를 거느린 대지주였던 어머니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농노들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 조차 강압적으로 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투르게네프는 어렸을 때부터 농노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면서 자랐고 따라서 스파스코애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농노제에 대한 비판 의식 농민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 등이 이때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란 투르게네프는 독일에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이런 배경 때문에 그는 서구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아 러시아 구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본격적인 활동으로 지주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서사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고 이후에는 희곡으로 전환하여 러시아 최초의 근대적 희곡 작품들을 창작했습니다. 이후 투르게네프는 당대 러시아 모습을 소설로써 기록하기로 결심하고 러시아 귀족 계급과 지식인 계층의 사회적 변모를 소설에 담음으로써 러시아의 사상적 문화적 변화과정을 그려내고 새로운 사상을 확산 고취하려 한 것입니다. 1850년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는 곧바로 영지의 농노들을 해방시켰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줄곧 진보적 지식인들을 탄압하는 가운데 농노제를 열렬히 비판하던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당국으로 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탄압을 피해 프랑스에 머물면서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을 발표하는 등 19세기 러시아 문단의 주요 작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주요 줄거리
어느 술집에서 주인과 세르게이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라는 세 남자가 각자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별다른 첫사랑 이야기가 없는 주인 세르게이와는 달리 블라디미르는 가슴 아픈 첫사랑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는 이를 글로 남기게 됩니다.
블라디미르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열여섯 살 때 모스크바의 한 농장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의 집 별채에 자세키나라는 공작부인이 딸과 함께 이사를 옵니다. 어느 날 산책을 즐기던 블라디미르는 정원에서 한 젊은 여자를 만나게 되고 너무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한눈에 반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공작부인의 딸인 지나이다였고 블라디미르는 그녀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별채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지나이다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의 눈에 비친 지나이다는 도도한 아름다움과 거침없는 매력을 가진 처녀였고 블라디미르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지만 머릿속이 온통 지나이다 생각에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얼마 후에 자세키나와 지나이다가 블라디미르 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게 되고 지나이다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날 저녁 8시에 오라고 합니다. 8시가 되자 그녀의 집으로 가는데 거기에는 말렙스키 백작 등 다섯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지나이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블라디미르도 이 무리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녀의 환심을 사려 애쓰지만 그녀는 블라디미르를 동생이나 친구처럼 대할 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지나이다에 대한 열정에 휩싸인 그는 그녀의 주위를 맴돌게 되고 지나이다는 그런 그에게 여지를 주며 붙잡아 놓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여러 청년들을 꼼짝 못 하게 휘어잡듯 블라디미르의 사랑을 확인한 뒤 친구로 지내며 자신의 시동이 되어달라 합니다.
결국 그녀에게 빠져 지나이다의 시동이 된 블라디미르는 다섯 명의 남자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들은 돌아가며 상상의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지나이다는 한 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무도회에 참석한 여왕은 손님들 중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오로지 정원에 있는 사람만 바라보고 생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블라디미르는 그녀에게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짐작하고 질투에 휩싸이게 됩니다.
다음 날 말렙스키로부터 지나이다의 시동이라고 조롱을 받아 화가 난 블라디미르는 그날 밤에 칼을 품고 정원에 나가 지나이다의 마음을 빼앗은 자를 죽이려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가 발견한 남자는 놀랍게도 블라디미르의 아버지였고 충격을 받은 그는 칼을 떨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와 버립니다. 지나이다는 블라디미르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라디미르는 아버지가 지나이다의 팔을 채찍으로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그녀에게 아버지는 채찍질로서 자신의 단호한 마음을 표현하고 그녀 또한 포기하기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가 빨갛게 부어오른 자기 팔의 채찍 자국에 거듭 입 맞추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원망도 미움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만들어준 상처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에 블라디미르는 대학에 입학을 하고 그 후 아버지는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는 지나이다가 결혼을 했으며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블라디미르는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지나이다의 과거를 떠올리며 상념에 젖습니다.
작품 알기
첫사랑은 액자 소설로서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세 남자가 첫사랑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성인이 된 블라디미르가 어린 시절에 겪은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순수한 기쁨과 떨림을 의미했지만 자신이 사랑한 지나이다가 아버지의 연인임을 안 순간 그는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채찍질과 지나이다의 맹목적인 사랑에 또 다른 충격을 받습니다.
지나이다의 연인이 누구인지 밝혀지기 전 그녀에 대한 블라디미르의 풋사랑이 그려질 때까지만 해도 이 소설은 여느 첫사랑 이야기처럼 미숙하고 유치한 사랑의 감정에 대한 잔잔한 회고인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나이다의 첫사랑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게 됩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말하는 첫사랑은 블라디미르의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지나이다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블라디미르에게 첫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맛보게 한 여인이지만 또한 그의 아버지를 통해 첫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뼈아프게 겪었던 여인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지나이다의 맹목적인 사랑 또한 그녀와의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있지만 그런 열정의 강렬함 때문에 오히려 그녀를 뿌리치는 아버지의 행동 지나이다의 마음을 훔친 자의 정체보다 처음으로 목격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 블라디미르를 충격에 빠트리게 됩니다.
사랑이 반드시 기쁨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며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관능과 열정은 그가 알고 있던 평화로운 세계와는 또 다른 차원이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그에게 아픔과 절망을 의미하게 되었고 그는 아버지와 지나이다의 관계를 통해서도 사랑이 고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첫사랑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많은 것들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그 충격과 아픔은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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