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이제 죽음은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더 무거워져서 그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두 소년들이 침대를 들어 올리자 문득 괜찮아졌고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해리는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안락한 생활에 빠져 과음과 나태 속에서 점차 자신의 재능을 잃어갔지요. 그의 머릿속 깊은 곳에는 아직 소설로 쓰지 않은 체험과 소재들이 잠자고 있지만 이제 그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작가로서는 이미 폐인이 된 상태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매료된 어느 부유한 미망인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파리에서 살다가 아프리카로 왔습니다. 총을 잘 쏘고 사냥을 좋아하는 그녀가 아프리카 여행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그들은 사냥도 하고 적당히 안락한 생활을 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리는 영양 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 하다가 가시에 무릎을 긁히고 맙니다. 그러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상처가 감염이 되었고 다리가 썩어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으며 결국 오지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던 그는 2주일 만에 괴저병으로 죽게 됩니다.
작품 알기
죽음 직전에 돌아보는 속물적인 삶
죽음이 다가왔음을 느끼면서 해리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봅니다. 파리의 빈민가에 틀어박혀 소설 쓰기에 몰두하던 작가 초년의 시절, 다시 돌아보건대 그때가 가장 그에게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로서 성공한 다음, 그는 점차 안락하고 타락한 생활에 빠져 들었습니다. 게으름과 타성 속물근성에 빠져 작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하는데 힘쓰지 않았고 대신 작가로서의 명성을 이용해 부유한 여자들을 유혹하고 그녀들에게 얹혀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외도를 일 삶았고 매춘부와 정사를 벌이고 아침 햇살 속에서 환멸을 느끼기도 했으며 다른 여자에게 눈이 팔려 자신의 가정을 깨뜨려 버렸던 일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파괴해 버린 것이 자기 자신이며 아직도 소설로 쓰지 못한 많은 것들이 남아 있음을 깨닫지만 이미 때가 너무 늦었습니다. 그의 상처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고 그를 구해 줄 비행기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제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죽음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가볍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해리의 모습이 우리 인간의 모습을 잘 대변해주고 있으며 죽음 앞에 압도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봉우리에서 죽은 한 마리 표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그를 옮겨 줄 현실의 비행기는 오지 않지만 죽어 가는 마지막 순간에 그는 상상 속에서 헬렌의 도움을 받아 콤프턴의 비행기에 탑승합니다. 비행기는 날아올라 평야를 지나고 마침내 거대한 킬리만자로의 봉우리로 향합니다. 환상 속에서 그는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산봉우리가 자기의 목적지임을 알게 됩니다. 바로 죽음에 이른 것입니다.
이 작품의 첫머리에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산꼭대기 근처에서 죽어서 말라 얼어붙은 표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사실 킬리만자로 꼭대기 근처에는 헤밍웨이가 말한 그 표범의 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헤밍웨이는 이런 허구적인 서술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한 것일까요?
표범은 사냥감을 쫓아 이곳에 올라온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표범의 목표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오르는 일이었을 겁니다. 아무것도 얻을 게 없지만 절정은 절정이라는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며 인간은 누구나 이 표범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 너머의 그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만년설에 덮인 킬리만자로의 산봉우리는 가장 높고 숭고한 삶의 목표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해리가 나태와 타성에 젖어 잊어버리고 사는 그것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첫머리에 나오는 죽은 표범은 바로 이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표범은 비록 정상까지 오르지 못하고 죽었지만 어쩌면 이는 위대하고 영웅적인 삶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댓글